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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5.29 도산서원과 봉정사
  2. 2006.05.29 도산서원과 봉정사
  3. 2006.05.29 도산서원과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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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5.29 도산서원과 봉정사
  7. 2006.05.29 도산서원과 봉정사
  8. 2006.05.29 도산서원과 봉정사

일요일은 일요일이다.
아무리 아픈 사람들이 모여있는 병원이라도 일요일은 회진이 없다.
대신 외출이 있다.
댓바람으로 아침을 맞아 식사를 하고 간호사실과 원무과를 오가며 싸인 몇 개 받고 환자복을 잠시 벗었다.
중앙현관을 나서는 내 모습이  대형 유리창에 반사되어 보이는게 멋지다. ㅋㅋ
활보의 끝은 택시 승강장으로 "아저씨 도산공원 갈려는데 시내버스 운행하는데까지 부탁할께요!?"
어제 저녁 인터넷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거리는 대충 한시간 거리에 버스 정류장 근처 시내버스를 이용한다고 되어 있어 그 정보를 말씀드리면서 얼띠기 외지인이 아닌 것을 확인시키고 싶었다. 나도 경상도 놈인데 오히려 경상도에 오면 더 객지인 ?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지내고  난 후 20년을 경상도를 떠나 있다보니 오히려 경상도에 와서 객지인 취급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노릇일지도 모른다.
저번엔 대구에 들러서 고속터미널에서 졸업한 고등학교가는택시를 탓는데 아저씨가 돌리는것을 모를것이라 믿었는지 날 돌리더라. 내참 위쒸..... 아찌한테 한마디 쏴 붙였지만 영 씨...,....
 
하여튼 그래서 기본요금만 내고 택시를 내려 40분 기다려 도산공원가는 버스에 올랐다.
와룡이란 지명을 가진 동네를지나 한참 가더니 나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 입구까지 따라선 아랫쪽 강줄기가 그리는 호가 매우 장려하다. 그리고 늪지 가운데 자리잡은 별과터 자리는 참 운치있어 보였다.
입장료를 내니 표를 주던데  그 뒤에 적혀있는 소개를 옮겨볼까한다.
 
도산서원
 
사적 제 170호
도산서원은 해동주자라 일컫는 퇴계 이황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으로 조선 선조 7년 (1574)에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림들이 상덕사(보물 제 211호)란 사묘를 지어 선생을 향사하였고 , 전교당( 보물 제 210호) 과 동,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하였으며 선조 8년 (1575)에 사액을 받음으로서 영남유학의 총 본산이 되었다.
http://www.andong.go.kr
관람권 어른 1.500원
 
소담한 공부방 분위기에 전망좋은 산장 분위기가 곂쳐져 있는 장소이다.
 
힘이 들었다. 나와서 한참을 벤취에서 쉬다보니 그래도 다시금 안동시내로 가는 버스가 왔다.
내친김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이 보고싶어졌다. 봉정사로 가기로 했다.
역시 봉정사도 시내 안동초등학교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길인데 한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구시장에 들러 요기를 하기로 했다. 첫 골목은 온통 찜닭집이다.ㅋㅋㅋ
생각이 없어 오른쪼긍로 꺽어 불량식품?을 파는 가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다 고만고만한데 두가지 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맑은 낙동가 줄기에 있어서 인지 다슬기(골뱅이, 고디, 골비, 골베이 등등 부르는 이름이 다양한 민물 고동)를 팔고 있었지만 쪽쪽 빨아먹기가 귀찮아 넘기고 나니 튀김집이다. 우아! 내가 좋아하는 고추튀김이 있다. 매운 풋고추 큼지막한 녀석의 배를 가르고 그 자리에 고기와 두부 그리고 부추,당면 삶은 것들을 넣어 양념한 뒤 옷을 입혀 튀겨낸 음식으로 아주 맛있다.
침이 고이기에 아줌마한테 얼마냐고 물었다.
"다른 건 다 니게씩 파는데 그건 시게야"
하신다. 아마도 세개에 이천원 인가 했는데 세개에 고작 천원이란다.
감사합니다.
 
기름묻은 입가를 쓰윽 닦고 시장안가슴을 더 파고 들어갔다. 손국수가 먹고 싶은데 아무래도 잔치국수밖에서는 방법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밥 한공기 덤으로 줄께"하는 집으로 들어갔다.
뭐 좋다. 다싯물도 구수하고 김치에 짠지에 젓갈도 하나 얹혀진 상을 주시더니 숭늉인가 싶게 무엇을 담아주는데 마셔보니 감주다. 야! 진짜 감주다..
 
풋고추를 몇개 담아 주셨는데 너무 먹음직해보여 콤콤한 집된장에 찍어하나를 해 치웠다.아구
이곳이 영양근처지.. 지대로 걸렸다. 귀밑머리로 줄줄이 땀이 아니라 물이 센다. 우아... 감주 없었으면 십년 감수했을것이다.식은밥으로 아직도 얼럴한 혀를 달래고 냉수를마셨다. 시간이 얼추 되었구나 싶어 다시 버스 정류소로 갈 작정이었다.
 
"얼마에요?'
"응  이천원"
"예 !! 그렇게 싸요? 싸기뭐가 싸.. 뭐 준게 있다고?"

그래 아직 천원은 의미가 있는 밥값의 힘이 있는 것이었다.
 
잘먹었어요 평소보다 다른사람보다 더 깊이 인사하고 버스타러 갔다.
 
 
봉정사는 버스로 약 30분 영주방향으로 떨어져 있는 곳이다.
오는 길에 있던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김 성길의 본가를 들렸는데 정말 이게 역사와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 느껴진 종택이었다.
봉정사는 길게 얘기할 필요없이 꼭 가서 봐야하는 사찰중에 하나이다.
천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도 저렇게 고고한 단아한 목조건물인 극락전은 자랑거리였다.
특히나 본존 아미타불을 모신 집이나 법당전체를 올린 건축기술을 비전문가인 사람들이 봐도 완성도에 감탄이 날 정도였다.
 
내려오는 길에 홍화씨 기름을 샀다.
 
원인모를 병마와 싸우는 친구를 위해 한병, 나이를 거꾸로 자시는 어머니를 위해 한병.
 
오랜만에  가득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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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과 봉정사

내 글 2006. 5. 29. 00:00

일요일은 일요일이다.
아무리 아픈 사람들이 모여있는 병원이라도 일요일은 회진이 없다.
대신 외출이 있다.
댓바람으로 아침을 맞아 식사를 하고 간호사실과 원무과를 오가며 싸인 몇 개 받고 환자복을 잠시 벗었다.
중앙현관을 나서는 내 모습이  대형 유리창에 반사되어 보이는게 멋지다. ㅋㅋ
활보의 끝은 택시 승강장으로 "아저씨 도산공원 갈려는데 시내버스 운행하는데까지 부탁할께요!?"
어제 저녁 인터넷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거리는 대충 한시간 거리에 버스 정류장 근처 시내버스를 이용한다고 되어 있어 그 정보를 말씀드리면서 얼띠기 외지인이 아닌 것을 확인시키고 싶었다. 나도 경상도 놈인데 오히려 경상도에 오면 더 객지인 ?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지내고  난 후 20년을 경상도를 떠나 있다보니 오히려 경상도에 와서 객지인 취급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노릇일지도 모른다.
저번엔 대구에 들러서 고속터미널에서 졸업한 고등학교가는택시를 탓는데 아저씨가 돌리는것을 모를것이라 믿었는지 날 돌리더라. 내참 위쒸..... 아찌한테 한마디 쏴 붙였지만 영 씨...,....
 
하여튼 그래서 기본요금만 내고 택시를 내려 40분 기다려 도산공원가는 버스에 올랐다.
와룡이란 지명을 가진 동네를지나 한참 가더니 나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 입구까지 따라선 아랫쪽 강줄기가 그리는 호가 매우 장려하다. 그리고 늪지 가운데 자리잡은 별과터 자리는 참 운치있어 보였다.
입장료를 내니 표를 주던데  그 뒤에 적혀있는 소개를 옮겨볼까한다.
 
도산서원
 
사적 제 170호
도산서원은 해동주자라 일컫는 퇴계 이황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으로 조선 선조 7년 (1574)에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림들이 상덕사(보물 제 211호)란 사묘를 지어 선생을 향사하였고 , 전교당( 보물 제 210호) 과 동,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하였으며 선조 8년 (1575)에 사액을 받음으로서 영남유학의 총 본산이 되었다.
http://www.andong.go.kr
관람권 어른 1.500원
 
소담한 공부방 분위기에 전망좋은 산장 분위기가 곂쳐져 있는 장소이다.
 
힘이 들었다. 나와서 한참을 벤취에서 쉬다보니 그래도 다시금 안동시내로 가는 버스가 왔다.
내친김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이 보고싶어졌다. 봉정사로 가기로 했다.
역시 봉정사도 시내 안동초등학교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길인데 한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구시장에 들러 요기를 하기로 했다. 첫 골목은 온통 찜닭집이다.ㅋㅋㅋ
생각이 없어 오른쪼긍로 꺽어 불량식품?을 파는 가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다 고만고만한데 두가지 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맑은 낙동가 줄기에 있어서 인지 다슬기(골뱅이, 고디, 골비, 골베이 등등 부르는 이름이 다양한 민물 고동)를 팔고 있었지만 쪽쪽 빨아먹기가 귀찮아 넘기고 나니 튀김집이다. 우아! 내가 좋아하는 고추튀김이 있다. 매운 풋고추 큼지막한 녀석의 배를 가르고 그 자리에 고기와 두부 그리고 부추,당면 삶은 것들을 넣어 양념한 뒤 옷을 입혀 튀겨낸 음식으로 아주 맛있다.
침이 고이기에 아줌마한테 얼마냐고 물었다.
"다른 건 다 니게씩 파는데 그건 시게야"
하신다. 아마도 세개에 이천원 인가 했는데 세개에 고작 천원이란다.
감사합니다.
 
기름묻은 입가를 쓰윽 닦고 시장안가슴을 더 파고 들어갔다. 손국수가 먹고 싶은데 아무래도 잔치국수밖에서는 방법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밥 한공기 덤으로 줄께"하는 집으로 들어갔다.
뭐 좋다. 다싯물도 구수하고 김치에 짠지에 젓갈도 하나 얹혀진 상을 주시더니 숭늉인가 싶게 무엇을 담아주는데 마셔보니 감주다. 야! 진짜 감주다..
 
풋고추를 몇개 담아 주셨는데 너무 먹음직해보여 콤콤한 집된장에 찍어하나를 해 치웠다.아구
이곳이 영양근처지.. 지대로 걸렸다. 귀밑머리로 줄줄이 땀이 아니라 물이 센다. 우아... 감주 없었으면 십년 감수했을것이다.식은밥으로 아직도 얼럴한 혀를 달래고 냉수를마셨다. 시간이 얼추 되었구나 싶어 다시 버스 정류소로 갈 작정이었다.
 
"얼마에요?'
"응  이천원"
"예 !! 그렇게 싸요? 싸기뭐가 싸.. 뭐 준게 있다고?"

그래 아직 천원은 의미가 있는 밥값의 힘이 있는 것이었다.
 
잘먹었어요 평소보다 다른사람보다 더 깊이 인사하고 버스타러 갔다.
 
 
봉정사는 버스로 약 30분 영주방향으로 떨어져 있는 곳이다.
오는 길에 있던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김 성길의 본가를 들렸는데 정말 이게 역사와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 느껴진 종택이었다.
봉정사는 길게 얘기할 필요없이 꼭 가서 봐야하는 사찰중에 하나이다.
천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도 저렇게 고고한 단아한 목조건물인 극락전은 자랑거리였다.
특히나 본존 아미타불을 모신 집이나 법당전체를 올린 건축기술을 비전문가인 사람들이 봐도 완성도에 감탄이 날 정도였다.
 
내려오는 길에 홍화씨 기름을 샀다.
 
원인모를 병마와 싸우는 친구를 위해 한병, 나이를 거꾸로 자시는 어머니를 위해 한병.
 
오랜만에  가득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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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일요일이다.
아무리 아픈 사람들이 모여있는 병원이라도 일요일은 회진이 없다.
대신 외출이 있다.
댓바람으로 아침을 맞아 식사를 하고 간호사실과 원무과를 오가며 싸인 몇 개 받고 환자복을 잠시 벗었다.
중앙현관을 나서는 내 모습이  대형 유리창에 반사되어 보이는게 멋지다. ㅋㅋ
활보의 끝은 택시 승강장으로 "아저씨 도산공원 갈려는데 시내버스 운행하는데까지 부탁할께요!?"
어제 저녁 인터넷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거리는 대충 한시간 거리에 버스 정류장 근처 시내버스를 이용한다고 되어 있어 그 정보를 말씀드리면서 얼띠기 외지인이 아닌 것을 확인시키고 싶었다. 나도 경상도 놈인데 오히려 경상도에 오면 더 객지인 ?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지내고  난 후 20년을 경상도를 떠나 있다보니 오히려 경상도에 와서 객지인 취급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노릇일지도 모른다.
저번엔 대구에 들러서 고속터미널에서 졸업한 고등학교가는택시를 탓는데 아저씨가 돌리는것을 모를것이라 믿었는지 날 돌리더라. 내참 위쒸..... 아찌한테 한마디 쏴 붙였지만 영 씨...,....
 
하여튼 그래서 기본요금만 내고 택시를 내려 40분 기다려 도산공원가는 버스에 올랐다.
와룡이란 지명을 가진 동네를지나 한참 가더니 나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 입구까지 따라선 아랫쪽 강줄기가 그리는 호가 매우 장려하다. 그리고 늪지 가운데 자리잡은 별과터 자리는 참 운치있어 보였다.
입장료를 내니 표를 주던데  그 뒤에 적혀있는 소개를 옮겨볼까한다.
 
도산서원
 
사적 제 170호
도산서원은 해동주자라 일컫는 퇴계 이황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으로 조선 선조 7년 (1574)에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림들이 상덕사(보물 제 211호)란 사묘를 지어 선생을 향사하였고 , 전교당( 보물 제 210호) 과 동,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하였으며 선조 8년 (1575)에 사액을 받음으로서 영남유학의 총 본산이 되었다.
http://www.andong.go.kr
관람권 어른 1.500원
 
소담한 공부방 분위기에 전망좋은 산장 분위기가 곂쳐져 있는 장소이다.
 
힘이 들었다. 나와서 한참을 벤취에서 쉬다보니 그래도 다시금 안동시내로 가는 버스가 왔다.
내친김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이 보고싶어졌다. 봉정사로 가기로 했다.
역시 봉정사도 시내 안동초등학교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길인데 한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구시장에 들러 요기를 하기로 했다. 첫 골목은 온통 찜닭집이다.ㅋㅋㅋ
생각이 없어 오른쪼긍로 꺽어 불량식품?을 파는 가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다 고만고만한데 두가지 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맑은 낙동가 줄기에 있어서 인지 다슬기(골뱅이, 고디, 골비, 골베이 등등 부르는 이름이 다양한 민물 고동)를 팔고 있었지만 쪽쪽 빨아먹기가 귀찮아 넘기고 나니 튀김집이다. 우아! 내가 좋아하는 고추튀김이 있다. 매운 풋고추 큼지막한 녀석의 배를 가르고 그 자리에 고기와 두부 그리고 부추,당면 삶은 것들을 넣어 양념한 뒤 옷을 입혀 튀겨낸 음식으로 아주 맛있다.
침이 고이기에 아줌마한테 얼마냐고 물었다.
"다른 건 다 니게씩 파는데 그건 시게야"
하신다. 아마도 세개에 이천원 인가 했는데 세개에 고작 천원이란다.
감사합니다.
 
기름묻은 입가를 쓰윽 닦고 시장안가슴을 더 파고 들어갔다. 손국수가 먹고 싶은데 아무래도 잔치국수밖에서는 방법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밥 한공기 덤으로 줄께"하는 집으로 들어갔다.
뭐 좋다. 다싯물도 구수하고 김치에 짠지에 젓갈도 하나 얹혀진 상을 주시더니 숭늉인가 싶게 무엇을 담아주는데 마셔보니 감주다. 야! 진짜 감주다..
 
풋고추를 몇개 담아 주셨는데 너무 먹음직해보여 콤콤한 집된장에 찍어하나를 해 치웠다.아구
이곳이 영양근처지.. 지대로 걸렸다. 귀밑머리로 줄줄이 땀이 아니라 물이 센다. 우아... 감주 없었으면 십년 감수했을것이다.식은밥으로 아직도 얼럴한 혀를 달래고 냉수를마셨다. 시간이 얼추 되었구나 싶어 다시 버스 정류소로 갈 작정이었다.
 
"얼마에요?'
"응  이천원"
"예 !! 그렇게 싸요? 싸기뭐가 싸.. 뭐 준게 있다고?"

그래 아직 천원은 의미가 있는 밥값의 힘이 있는 것이었다.
 
잘먹었어요 평소보다 다른사람보다 더 깊이 인사하고 버스타러 갔다.
 
 
봉정사는 버스로 약 30분 영주방향으로 떨어져 있는 곳이다.
오는 길에 있던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김 성길의 본가를 들렸는데 정말 이게 역사와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 느껴진 종택이었다.
봉정사는 길게 얘기할 필요없이 꼭 가서 봐야하는 사찰중에 하나이다.
천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도 저렇게 고고한 단아한 목조건물인 극락전은 자랑거리였다.
특히나 본존 아미타불을 모신 집이나 법당전체를 올린 건축기술을 비전문가인 사람들이 봐도 완성도에 감탄이 날 정도였다.
 
내려오는 길에 홍화씨 기름을 샀다.
 
원인모를 병마와 싸우는 친구를 위해 한병, 나이를 거꾸로 자시는 어머니를 위해 한병.
 
오랜만에  가득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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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일요일이다.
아무리 아픈 사람들이 모여있는 병원이라도 일요일은 회진이 없다.
대신 외출이 있다.
댓바람으로 아침을 맞아 식사를 하고 간호사실과 원무과를 오가며 싸인 몇 개 받고 환자복을 잠시 벗었다.
중앙현관을 나서는 내 모습이  대형 유리창에 반사되어 보이는게 멋지다. ㅋㅋ
활보의 끝은 택시 승강장으로 "아저씨 도산공원 갈려는데 시내버스 운행하는데까지 부탁할께요!?"
어제 저녁 인터넷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거리는 대충 한시간 거리에 버스 정류장 근처 시내버스를 이용한다고 되어 있어 그 정보를 말씀드리면서 얼띠기 외지인이 아닌 것을 확인시키고 싶었다. 나도 경상도 놈인데 오히려 경상도에 오면 더 객지인 ?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지내고  난 후 20년을 경상도를 떠나 있다보니 오히려 경상도에 와서 객지인 취급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노릇일지도 모른다.
저번엔 대구에 들러서 고속터미널에서 졸업한 고등학교가는택시를 탓는데 아저씨가 돌리는것을 모를것이라 믿었는지 날 돌리더라. 내참 위쒸..... 아찌한테 한마디 쏴 붙였지만 영 씨...,....
 
하여튼 그래서 기본요금만 내고 택시를 내려 40분 기다려 도산공원가는 버스에 올랐다.
와룡이란 지명을 가진 동네를지나 한참 가더니 나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 입구까지 따라선 아랫쪽 강줄기가 그리는 호가 매우 장려하다. 그리고 늪지 가운데 자리잡은 별과터 자리는 참 운치있어 보였다.
입장료를 내니 표를 주던데  그 뒤에 적혀있는 소개를 옮겨볼까한다.
 
도산서원
 
사적 제 170호
도산서원은 해동주자라 일컫는 퇴계 이황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으로 조선 선조 7년 (1574)에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림들이 상덕사(보물 제 211호)란 사묘를 지어 선생을 향사하였고 , 전교당( 보물 제 210호) 과 동,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하였으며 선조 8년 (1575)에 사액을 받음으로서 영남유학의 총 본산이 되었다.
http://www.andong.go.kr
관람권 어른 1.500원
 
소담한 공부방 분위기에 전망좋은 산장 분위기가 곂쳐져 있는 장소이다.
 
힘이 들었다. 나와서 한참을 벤취에서 쉬다보니 그래도 다시금 안동시내로 가는 버스가 왔다.
내친김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이 보고싶어졌다. 봉정사로 가기로 했다.
역시 봉정사도 시내 안동초등학교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길인데 한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구시장에 들러 요기를 하기로 했다. 첫 골목은 온통 찜닭집이다.ㅋㅋㅋ
생각이 없어 오른쪼긍로 꺽어 불량식품?을 파는 가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다 고만고만한데 두가지 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맑은 낙동가 줄기에 있어서 인지 다슬기(골뱅이, 고디, 골비, 골베이 등등 부르는 이름이 다양한 민물 고동)를 팔고 있었지만 쪽쪽 빨아먹기가 귀찮아 넘기고 나니 튀김집이다. 우아! 내가 좋아하는 고추튀김이 있다. 매운 풋고추 큼지막한 녀석의 배를 가르고 그 자리에 고기와 두부 그리고 부추,당면 삶은 것들을 넣어 양념한 뒤 옷을 입혀 튀겨낸 음식으로 아주 맛있다.
침이 고이기에 아줌마한테 얼마냐고 물었다.
"다른 건 다 니게씩 파는데 그건 시게야"
하신다. 아마도 세개에 이천원 인가 했는데 세개에 고작 천원이란다.
감사합니다.
 
기름묻은 입가를 쓰윽 닦고 시장안가슴을 더 파고 들어갔다. 손국수가 먹고 싶은데 아무래도 잔치국수밖에서는 방법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밥 한공기 덤으로 줄께"하는 집으로 들어갔다.
뭐 좋다. 다싯물도 구수하고 김치에 짠지에 젓갈도 하나 얹혀진 상을 주시더니 숭늉인가 싶게 무엇을 담아주는데 마셔보니 감주다. 야! 진짜 감주다..
 
풋고추를 몇개 담아 주셨는데 너무 먹음직해보여 콤콤한 집된장에 찍어하나를 해 치웠다.아구
이곳이 영양근처지.. 지대로 걸렸다. 귀밑머리로 줄줄이 땀이 아니라 물이 센다. 우아... 감주 없었으면 십년 감수했을것이다.식은밥으로 아직도 얼럴한 혀를 달래고 냉수를마셨다. 시간이 얼추 되었구나 싶어 다시 버스 정류소로 갈 작정이었다.
 
"얼마에요?'
"응  이천원"
"예 !! 그렇게 싸요? 싸기뭐가 싸.. 뭐 준게 있다고?"

그래 아직 천원은 의미가 있는 밥값의 힘이 있는 것이었다.
 
잘먹었어요 평소보다 다른사람보다 더 깊이 인사하고 버스타러 갔다.
 
 
봉정사는 버스로 약 30분 영주방향으로 떨어져 있는 곳이다.
오는 길에 있던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김 성길의 본가를 들렸는데 정말 이게 역사와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 느껴진 종택이었다.
봉정사는 길게 얘기할 필요없이 꼭 가서 봐야하는 사찰중에 하나이다.
천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도 저렇게 고고한 단아한 목조건물인 극락전은 자랑거리였다.
특히나 본존 아미타불을 모신 집이나 법당전체를 올린 건축기술을 비전문가인 사람들이 봐도 완성도에 감탄이 날 정도였다.
 
내려오는 길에 홍화씨 기름을 샀다.
 
원인모를 병마와 싸우는 친구를 위해 한병, 나이를 거꾸로 자시는 어머니를 위해 한병.
 
오랜만에  가득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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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일요일이다.
아무리 아픈 사람들이 모여있는 병원이라도 일요일은 회진이 없다.
대신 외출이 있다.
댓바람으로 아침을 맞아 식사를 하고 간호사실과 원무과를 오가며 싸인 몇 개 받고 환자복을 잠시 벗었다.
중앙현관을 나서는 내 모습이  대형 유리창에 반사되어 보이는게 멋지다. ㅋㅋ
활보의 끝은 택시 승강장으로 "아저씨 도산공원 갈려는데 시내버스 운행하는데까지 부탁할께요!?"
어제 저녁 인터넷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거리는 대충 한시간 거리에 버스 정류장 근처 시내버스를 이용한다고 되어 있어 그 정보를 말씀드리면서 얼띠기 외지인이 아닌 것을 확인시키고 싶었다. 나도 경상도 놈인데 오히려 경상도에 오면 더 객지인 ?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지내고  난 후 20년을 경상도를 떠나 있다보니 오히려 경상도에 와서 객지인 취급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노릇일지도 모른다.
저번엔 대구에 들러서 고속터미널에서 졸업한 고등학교가는택시를 탓는데 아저씨가 돌리는것을 모를것이라 믿었는지 날 돌리더라. 내참 위쒸..... 아찌한테 한마디 쏴 붙였지만 영 씨...,....
 
하여튼 그래서 기본요금만 내고 택시를 내려 40분 기다려 도산공원가는 버스에 올랐다.
와룡이란 지명을 가진 동네를지나 한참 가더니 나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 입구까지 따라선 아랫쪽 강줄기가 그리는 호가 매우 장려하다. 그리고 늪지 가운데 자리잡은 별과터 자리는 참 운치있어 보였다.
입장료를 내니 표를 주던데  그 뒤에 적혀있는 소개를 옮겨볼까한다.
 
도산서원
 
사적 제 170호
도산서원은 해동주자라 일컫는 퇴계 이황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으로 조선 선조 7년 (1574)에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림들이 상덕사(보물 제 211호)란 사묘를 지어 선생을 향사하였고 , 전교당( 보물 제 210호) 과 동,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하였으며 선조 8년 (1575)에 사액을 받음으로서 영남유학의 총 본산이 되었다.
http://www.andong.go.kr
관람권 어른 1.500원
 
소담한 공부방 분위기에 전망좋은 산장 분위기가 곂쳐져 있는 장소이다.
 
힘이 들었다. 나와서 한참을 벤취에서 쉬다보니 그래도 다시금 안동시내로 가는 버스가 왔다.
내친김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이 보고싶어졌다. 봉정사로 가기로 했다.
역시 봉정사도 시내 안동초등학교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길인데 한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구시장에 들러 요기를 하기로 했다. 첫 골목은 온통 찜닭집이다.ㅋㅋㅋ
생각이 없어 오른쪼긍로 꺽어 불량식품?을 파는 가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다 고만고만한데 두가지 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맑은 낙동가 줄기에 있어서 인지 다슬기(골뱅이, 고디, 골비, 골베이 등등 부르는 이름이 다양한 민물 고동)를 팔고 있었지만 쪽쪽 빨아먹기가 귀찮아 넘기고 나니 튀김집이다. 우아! 내가 좋아하는 고추튀김이 있다. 매운 풋고추 큼지막한 녀석의 배를 가르고 그 자리에 고기와 두부 그리고 부추,당면 삶은 것들을 넣어 양념한 뒤 옷을 입혀 튀겨낸 음식으로 아주 맛있다.
침이 고이기에 아줌마한테 얼마냐고 물었다.
"다른 건 다 니게씩 파는데 그건 시게야"
하신다. 아마도 세개에 이천원 인가 했는데 세개에 고작 천원이란다.
감사합니다.
 
기름묻은 입가를 쓰윽 닦고 시장안가슴을 더 파고 들어갔다. 손국수가 먹고 싶은데 아무래도 잔치국수밖에서는 방법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밥 한공기 덤으로 줄께"하는 집으로 들어갔다.
뭐 좋다. 다싯물도 구수하고 김치에 짠지에 젓갈도 하나 얹혀진 상을 주시더니 숭늉인가 싶게 무엇을 담아주는데 마셔보니 감주다. 야! 진짜 감주다..
 
풋고추를 몇개 담아 주셨는데 너무 먹음직해보여 콤콤한 집된장에 찍어하나를 해 치웠다.아구
이곳이 영양근처지.. 지대로 걸렸다. 귀밑머리로 줄줄이 땀이 아니라 물이 센다. 우아... 감주 없었으면 십년 감수했을것이다.식은밥으로 아직도 얼럴한 혀를 달래고 냉수를마셨다. 시간이 얼추 되었구나 싶어 다시 버스 정류소로 갈 작정이었다.
 
"얼마에요?'
"응  이천원"
"예 !! 그렇게 싸요? 싸기뭐가 싸.. 뭐 준게 있다고?"

그래 아직 천원은 의미가 있는 밥값의 힘이 있는 것이었다.
 
잘먹었어요 평소보다 다른사람보다 더 깊이 인사하고 버스타러 갔다.
 
 
봉정사는 버스로 약 30분 영주방향으로 떨어져 있는 곳이다.
오는 길에 있던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김 성길의 본가를 들렸는데 정말 이게 역사와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 느껴진 종택이었다.
봉정사는 길게 얘기할 필요없이 꼭 가서 봐야하는 사찰중에 하나이다.
천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도 저렇게 고고한 단아한 목조건물인 극락전은 자랑거리였다.
특히나 본존 아미타불을 모신 집이나 법당전체를 올린 건축기술을 비전문가인 사람들이 봐도 완성도에 감탄이 날 정도였다.
 
내려오는 길에 홍화씨 기름을 샀다.
 
원인모를 병마와 싸우는 친구를 위해 한병, 나이를 거꾸로 자시는 어머니를 위해 한병.
 
오랜만에  가득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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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일요일이다.
아무리 아픈 사람들이 모여있는 병원이라도 일요일은 회진이 없다.
대신 외출이 있다.
댓바람으로 아침을 맞아 식사를 하고 간호사실과 원무과를 오가며 싸인 몇 개 받고 환자복을 잠시 벗었다.
중앙현관을 나서는 내 모습이  대형 유리창에 반사되어 보이는게 멋지다. ㅋㅋ
활보의 끝은 택시 승강장으로 "아저씨 도산공원 갈려는데 시내버스 운행하는데까지 부탁할께요!?"
어제 저녁 인터넷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거리는 대충 한시간 거리에 버스 정류장 근처 시내버스를 이용한다고 되어 있어 그 정보를 말씀드리면서 얼띠기 외지인이 아닌 것을 확인시키고 싶었다. 나도 경상도 놈인데 오히려 경상도에 오면 더 객지인 ?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지내고  난 후 20년을 경상도를 떠나 있다보니 오히려 경상도에 와서 객지인 취급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노릇일지도 모른다.
저번엔 대구에 들러서 고속터미널에서 졸업한 고등학교가는택시를 탓는데 아저씨가 돌리는것을 모를것이라 믿었는지 날 돌리더라. 내참 위쒸..... 아찌한테 한마디 쏴 붙였지만 영 씨...,....
 
하여튼 그래서 기본요금만 내고 택시를 내려 40분 기다려 도산공원가는 버스에 올랐다.
와룡이란 지명을 가진 동네를지나 한참 가더니 나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 입구까지 따라선 아랫쪽 강줄기가 그리는 호가 매우 장려하다. 그리고 늪지 가운데 자리잡은 별과터 자리는 참 운치있어 보였다.
입장료를 내니 표를 주던데  그 뒤에 적혀있는 소개를 옮겨볼까한다.
 
도산서원
 
사적 제 170호
도산서원은 해동주자라 일컫는 퇴계 이황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으로 조선 선조 7년 (1574)에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림들이 상덕사(보물 제 211호)란 사묘를 지어 선생을 향사하였고 , 전교당( 보물 제 210호) 과 동,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하였으며 선조 8년 (1575)에 사액을 받음으로서 영남유학의 총 본산이 되었다.
http://www.andong.go.kr
관람권 어른 1.500원
 
소담한 공부방 분위기에 전망좋은 산장 분위기가 곂쳐져 있는 장소이다.
 
힘이 들었다. 나와서 한참을 벤취에서 쉬다보니 그래도 다시금 안동시내로 가는 버스가 왔다.
내친김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이 보고싶어졌다. 봉정사로 가기로 했다.
역시 봉정사도 시내 안동초등학교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길인데 한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구시장에 들러 요기를 하기로 했다. 첫 골목은 온통 찜닭집이다.ㅋㅋㅋ
생각이 없어 오른쪼긍로 꺽어 불량식품?을 파는 가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다 고만고만한데 두가지 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맑은 낙동가 줄기에 있어서 인지 다슬기(골뱅이, 고디, 골비, 골베이 등등 부르는 이름이 다양한 민물 고동)를 팔고 있었지만 쪽쪽 빨아먹기가 귀찮아 넘기고 나니 튀김집이다. 우아! 내가 좋아하는 고추튀김이 있다. 매운 풋고추 큼지막한 녀석의 배를 가르고 그 자리에 고기와 두부 그리고 부추,당면 삶은 것들을 넣어 양념한 뒤 옷을 입혀 튀겨낸 음식으로 아주 맛있다.
침이 고이기에 아줌마한테 얼마냐고 물었다.
"다른 건 다 니게씩 파는데 그건 시게야"
하신다. 아마도 세개에 이천원 인가 했는데 세개에 고작 천원이란다.
감사합니다.
 
기름묻은 입가를 쓰윽 닦고 시장안가슴을 더 파고 들어갔다. 손국수가 먹고 싶은데 아무래도 잔치국수밖에서는 방법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밥 한공기 덤으로 줄께"하는 집으로 들어갔다.
뭐 좋다. 다싯물도 구수하고 김치에 짠지에 젓갈도 하나 얹혀진 상을 주시더니 숭늉인가 싶게 무엇을 담아주는데 마셔보니 감주다. 야! 진짜 감주다..
 
풋고추를 몇개 담아 주셨는데 너무 먹음직해보여 콤콤한 집된장에 찍어하나를 해 치웠다.아구
이곳이 영양근처지.. 지대로 걸렸다. 귀밑머리로 줄줄이 땀이 아니라 물이 센다. 우아... 감주 없었으면 십년 감수했을것이다.식은밥으로 아직도 얼럴한 혀를 달래고 냉수를마셨다. 시간이 얼추 되었구나 싶어 다시 버스 정류소로 갈 작정이었다.
 
"얼마에요?'
"응  이천원"
"예 !! 그렇게 싸요? 싸기뭐가 싸.. 뭐 준게 있다고?"

그래 아직 천원은 의미가 있는 밥값의 힘이 있는 것이었다.
 
잘먹었어요 평소보다 다른사람보다 더 깊이 인사하고 버스타러 갔다.
 
 
봉정사는 버스로 약 30분 영주방향으로 떨어져 있는 곳이다.
오는 길에 있던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김 성길의 본가를 들렸는데 정말 이게 역사와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 느껴진 종택이었다.
봉정사는 길게 얘기할 필요없이 꼭 가서 봐야하는 사찰중에 하나이다.
천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도 저렇게 고고한 단아한 목조건물인 극락전은 자랑거리였다.
특히나 본존 아미타불을 모신 집이나 법당전체를 올린 건축기술을 비전문가인 사람들이 봐도 완성도에 감탄이 날 정도였다.
 
내려오는 길에 홍화씨 기름을 샀다.
 
원인모를 병마와 싸우는 친구를 위해 한병, 나이를 거꾸로 자시는 어머니를 위해 한병.
 
오랜만에  가득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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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일요일이다.
아무리 아픈 사람들이 모여있는 병원이라도 일요일은 회진이 없다.
대신 외출이 있다.
댓바람으로 아침을 맞아 식사를 하고 간호사실과 원무과를 오가며 싸인 몇 개 받고 환자복을 잠시 벗었다.
중앙현관을 나서는 내 모습이  대형 유리창에 반사되어 보이는게 멋지다. ㅋㅋ
활보의 끝은 택시 승강장으로 "아저씨 도산공원 갈려는데 시내버스 운행하는데까지 부탁할께요!?"
어제 저녁 인터넷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거리는 대충 한시간 거리에 버스 정류장 근처 시내버스를 이용한다고 되어 있어 그 정보를 말씀드리면서 얼띠기 외지인이 아닌 것을 확인시키고 싶었다. 나도 경상도 놈인데 오히려 경상도에 오면 더 객지인 ?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지내고  난 후 20년을 경상도를 떠나 있다보니 오히려 경상도에 와서 객지인 취급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노릇일지도 모른다.
저번엔 대구에 들러서 고속터미널에서 졸업한 고등학교가는택시를 탓는데 아저씨가 돌리는것을 모를것이라 믿었는지 날 돌리더라. 내참 위쒸..... 아찌한테 한마디 쏴 붙였지만 영 씨...,....
 
하여튼 그래서 기본요금만 내고 택시를 내려 40분 기다려 도산공원가는 버스에 올랐다.
와룡이란 지명을 가진 동네를지나 한참 가더니 나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 입구까지 따라선 아랫쪽 강줄기가 그리는 호가 매우 장려하다. 그리고 늪지 가운데 자리잡은 별과터 자리는 참 운치있어 보였다.
입장료를 내니 표를 주던데  그 뒤에 적혀있는 소개를 옮겨볼까한다.
 
도산서원
 
사적 제 170호
도산서원은 해동주자라 일컫는 퇴계 이황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으로 조선 선조 7년 (1574)에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림들이 상덕사(보물 제 211호)란 사묘를 지어 선생을 향사하였고 , 전교당( 보물 제 210호) 과 동,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하였으며 선조 8년 (1575)에 사액을 받음으로서 영남유학의 총 본산이 되었다.
http://www.andong.go.kr
관람권 어른 1.500원
 
소담한 공부방 분위기에 전망좋은 산장 분위기가 곂쳐져 있는 장소이다.
 
힘이 들었다. 나와서 한참을 벤취에서 쉬다보니 그래도 다시금 안동시내로 가는 버스가 왔다.
내친김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이 보고싶어졌다. 봉정사로 가기로 했다.
역시 봉정사도 시내 안동초등학교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길인데 한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구시장에 들러 요기를 하기로 했다. 첫 골목은 온통 찜닭집이다.ㅋㅋㅋ
생각이 없어 오른쪼긍로 꺽어 불량식품?을 파는 가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다 고만고만한데 두가지 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맑은 낙동가 줄기에 있어서 인지 다슬기(골뱅이, 고디, 골비, 골베이 등등 부르는 이름이 다양한 민물 고동)를 팔고 있었지만 쪽쪽 빨아먹기가 귀찮아 넘기고 나니 튀김집이다. 우아! 내가 좋아하는 고추튀김이 있다. 매운 풋고추 큼지막한 녀석의 배를 가르고 그 자리에 고기와 두부 그리고 부추,당면 삶은 것들을 넣어 양념한 뒤 옷을 입혀 튀겨낸 음식으로 아주 맛있다.
침이 고이기에 아줌마한테 얼마냐고 물었다.
"다른 건 다 니게씩 파는데 그건 시게야"
하신다. 아마도 세개에 이천원 인가 했는데 세개에 고작 천원이란다.
감사합니다.
 
기름묻은 입가를 쓰윽 닦고 시장안가슴을 더 파고 들어갔다. 손국수가 먹고 싶은데 아무래도 잔치국수밖에서는 방법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밥 한공기 덤으로 줄께"하는 집으로 들어갔다.
뭐 좋다. 다싯물도 구수하고 김치에 짠지에 젓갈도 하나 얹혀진 상을 주시더니 숭늉인가 싶게 무엇을 담아주는데 마셔보니 감주다. 야! 진짜 감주다..
 
풋고추를 몇개 담아 주셨는데 너무 먹음직해보여 콤콤한 집된장에 찍어하나를 해 치웠다.아구
이곳이 영양근처지.. 지대로 걸렸다. 귀밑머리로 줄줄이 땀이 아니라 물이 센다. 우아... 감주 없었으면 십년 감수했을것이다.식은밥으로 아직도 얼럴한 혀를 달래고 냉수를마셨다. 시간이 얼추 되었구나 싶어 다시 버스 정류소로 갈 작정이었다.
 
"얼마에요?'
"응  이천원"
"예 !! 그렇게 싸요? 싸기뭐가 싸.. 뭐 준게 있다고?"

그래 아직 천원은 의미가 있는 밥값의 힘이 있는 것이었다.
 
잘먹었어요 평소보다 다른사람보다 더 깊이 인사하고 버스타러 갔다.
 
 
봉정사는 버스로 약 30분 영주방향으로 떨어져 있는 곳이다.
오는 길에 있던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김 성길의 본가를 들렸는데 정말 이게 역사와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 느껴진 종택이었다.
봉정사는 길게 얘기할 필요없이 꼭 가서 봐야하는 사찰중에 하나이다.
천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도 저렇게 고고한 단아한 목조건물인 극락전은 자랑거리였다.
특히나 본존 아미타불을 모신 집이나 법당전체를 올린 건축기술을 비전문가인 사람들이 봐도 완성도에 감탄이 날 정도였다.
 
내려오는 길에 홍화씨 기름을 샀다.
 
원인모를 병마와 싸우는 친구를 위해 한병, 나이를 거꾸로 자시는 어머니를 위해 한병.
 
오랜만에  가득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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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일요일이다.
아무리 아픈 사람들이 모여있는 병원이라도 일요일은 회진이 없다.
대신 외출이 있다.
댓바람으로 아침을 맞아 식사를 하고 간호사실과 원무과를 오가며 싸인 몇 개 받고 환자복을 잠시 벗었다.
중앙현관을 나서는 내 모습이  대형 유리창에 반사되어 보이는게 멋지다. ㅋㅋ
활보의 끝은 택시 승강장으로 "아저씨 도산공원 갈려는데 시내버스 운행하는데까지 부탁할께요!?"
어제 저녁 인터넷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거리는 대충 한시간 거리에 버스 정류장 근처 시내버스를 이용한다고 되어 있어 그 정보를 말씀드리면서 얼띠기 외지인이 아닌 것을 확인시키고 싶었다. 나도 경상도 놈인데 오히려 경상도에 오면 더 객지인 ?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지내고  난 후 20년을 경상도를 떠나 있다보니 오히려 경상도에 와서 객지인 취급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노릇일지도 모른다.
저번엔 대구에 들러서 고속터미널에서 졸업한 고등학교가는택시를 탓는데 아저씨가 돌리는것을 모를것이라 믿었는지 날 돌리더라. 내참 위쒸..... 아찌한테 한마디 쏴 붙였지만 영 씨...,....
 
하여튼 그래서 기본요금만 내고 택시를 내려 40분 기다려 도산공원가는 버스에 올랐다.
와룡이란 지명을 가진 동네를지나 한참 가더니 나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 입구까지 따라선 아랫쪽 강줄기가 그리는 호가 매우 장려하다. 그리고 늪지 가운데 자리잡은 별과터 자리는 참 운치있어 보였다.
입장료를 내니 표를 주던데  그 뒤에 적혀있는 소개를 옮겨볼까한다.
 
도산서원
 
사적 제 170호
도산서원은 해동주자라 일컫는 퇴계 이황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으로 조선 선조 7년 (1574)에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림들이 상덕사(보물 제 211호)란 사묘를 지어 선생을 향사하였고 , 전교당( 보물 제 210호) 과 동,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하였으며 선조 8년 (1575)에 사액을 받음으로서 영남유학의 총 본산이 되었다.
http://www.andong.go.kr
관람권 어른 1.500원
 
소담한 공부방 분위기에 전망좋은 산장 분위기가 곂쳐져 있는 장소이다.
 
힘이 들었다. 나와서 한참을 벤취에서 쉬다보니 그래도 다시금 안동시내로 가는 버스가 왔다.
내친김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이 보고싶어졌다. 봉정사로 가기로 했다.
역시 봉정사도 시내 안동초등학교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길인데 한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구시장에 들러 요기를 하기로 했다. 첫 골목은 온통 찜닭집이다.ㅋㅋㅋ
생각이 없어 오른쪼긍로 꺽어 불량식품?을 파는 가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다 고만고만한데 두가지 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맑은 낙동가 줄기에 있어서 인지 다슬기(골뱅이, 고디, 골비, 골베이 등등 부르는 이름이 다양한 민물 고동)를 팔고 있었지만 쪽쪽 빨아먹기가 귀찮아 넘기고 나니 튀김집이다. 우아! 내가 좋아하는 고추튀김이 있다. 매운 풋고추 큼지막한 녀석의 배를 가르고 그 자리에 고기와 두부 그리고 부추,당면 삶은 것들을 넣어 양념한 뒤 옷을 입혀 튀겨낸 음식으로 아주 맛있다.
침이 고이기에 아줌마한테 얼마냐고 물었다.
"다른 건 다 니게씩 파는데 그건 시게야"
하신다. 아마도 세개에 이천원 인가 했는데 세개에 고작 천원이란다.
감사합니다.
 
기름묻은 입가를 쓰윽 닦고 시장안가슴을 더 파고 들어갔다. 손국수가 먹고 싶은데 아무래도 잔치국수밖에서는 방법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밥 한공기 덤으로 줄께"하는 집으로 들어갔다.
뭐 좋다. 다싯물도 구수하고 김치에 짠지에 젓갈도 하나 얹혀진 상을 주시더니 숭늉인가 싶게 무엇을 담아주는데 마셔보니 감주다. 야! 진짜 감주다..
 
풋고추를 몇개 담아 주셨는데 너무 먹음직해보여 콤콤한 집된장에 찍어하나를 해 치웠다.아구
이곳이 영양근처지.. 지대로 걸렸다. 귀밑머리로 줄줄이 땀이 아니라 물이 센다. 우아... 감주 없었으면 십년 감수했을것이다.식은밥으로 아직도 얼럴한 혀를 달래고 냉수를마셨다. 시간이 얼추 되었구나 싶어 다시 버스 정류소로 갈 작정이었다.
 
"얼마에요?'
"응  이천원"
"예 !! 그렇게 싸요? 싸기뭐가 싸.. 뭐 준게 있다고?"

그래 아직 천원은 의미가 있는 밥값의 힘이 있는 것이었다.
 
잘먹었어요 평소보다 다른사람보다 더 깊이 인사하고 버스타러 갔다.
 
 
봉정사는 버스로 약 30분 영주방향으로 떨어져 있는 곳이다.
오는 길에 있던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김 성길의 본가를 들렸는데 정말 이게 역사와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 느껴진 종택이었다.
봉정사는 길게 얘기할 필요없이 꼭 가서 봐야하는 사찰중에 하나이다.
천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도 저렇게 고고한 단아한 목조건물인 극락전은 자랑거리였다.
특히나 본존 아미타불을 모신 집이나 법당전체를 올린 건축기술을 비전문가인 사람들이 봐도 완성도에 감탄이 날 정도였다.
 
내려오는 길에 홍화씨 기름을 샀다.
 
원인모를 병마와 싸우는 친구를 위해 한병, 나이를 거꾸로 자시는 어머니를 위해 한병.
 
오랜만에  가득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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